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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자연휴양림

꿈속의 무릉도원 만수산자연휴양림

은빛세상 2010. 6. 10. 22:16

충남 부여에 있는 만수산자연휴양림은 차령산맥의 마지막 영봉으로 해발 575m의 만수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세가 연꽃잎처럼 형성되었다 하여 연화골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경관이 수려하고 노송과 천연림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꿈속의 무릉도원으로 지칭되어 온 명소로

맑은 공기와 함께 자연에 묻혀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더러운 무리들과 어울리는 것이 싫어 물 맑고 송림이 울창한

이곳에 와서 항시 산을 보고 소요하였다고 한다.

 

만수산자연휴양림으로 들어서면 중앙광장으로부터 이어지는 솔밭산책로엔 산막과 돌탑 등이 어우러져 있고.

솔향기 그윽한 노송과 천연림이 잘 조화된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더없이 좋은 곳이다.

 

관리사무실 왼쪽 산책로로 들어서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무량사로의 산행길. 계곡 건너 능선에 올라 고즈넉한

샛길로 가는 길은 호젓함이 더없이 좋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어  물놀이를 즐길 수 있고 아름다운 소나무 숲속에서 야영할 수 있도록 평상이

잘 만들어져 있다.

숙박시설로는 숲속의 집과 원두막 그리고 야영장과 단체활동을 위한 합숙소가 있고, 기타 시설로는 수영장과

야외음악당이 있다.

 

주변에는 고려시대 지어진 중층구조의 대웅전과 김시습 선생의 숨결이 살아있는 천년고찰 무량사

여름철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수리바위계곡 이 있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청소년 800원, 어린이 400원

주차료가 2,000원이다

 

위치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삼산리 산 40번지

이용문의 : 휴양림 관리사무소 - 041) 830-2348~9
               부여군청 공원산림과 - 041) 830-2344

 

 

 

 

 

 

 휴양림 초입에 있는 저수지를 지나면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을 지나면 매표소가 있다.

 

 

 

 

 

 

 

 

 

 

 

 

 

 

 

원두막(산막)

 

 

 

돌탑

 

 

 

 숲속의 집

 

 

 

 

 

 

 

 

 

 

 

 

 

 

 

 만수대

 

  

 

숲속의 집 앞에 야영장

 

 

 

 

 

 

 

 야영장

 

 

 

 산림휴양관

 

 

 

물놀이장

  

 

 

 

 

 

무량사와 비로봉으로 가는 등산로길

 

 

 

야외음악당 가는 길

 

 

 

 야외 음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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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호로 지정되었다. 사비성( 泗 比城 )이라고도한다. 이 산성은 부소산 의 산정을 중심으로 해서 1차적으로 테뫼식( 式 ) 산성을 축조하고, 다시 그 주위를 포곡식( 包 谷 式 )으로 약 1.5km에 걸쳐서 축조하였다. 현재 반월루( 半 月 樓 )가 있는 곳에서 산정을 두른 약 600m의 테뫼식 산성 안에는 영일루 ( 迎 日 樓 )와 군창지 ( 軍 倉 址 ) 그 밖의 건물터 등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탄화미( 炭 化 米 )가 많이 나오고 있는가 하면 토축( 土 築 ) 성벽도 완연히 남아 있다. 이 부소산성은 538년(성왕 16) 웅진( 熊 津 )에서 이곳으로 천도한 때를 전후하여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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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35호.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 東 南 里 ) 소재. ‘마래방죽'이라고도 한다. 부여읍에서 남쪽으로 약 1km 지점에 있으며, 동쪽에는 초석( 礎 石 )이 남아 있고, 주변에 옛 기와가 많이 산재하여 있다. 또 부근에는 대리석을 3단으로 쌓아올린 팔각형의 우물이 있는데, 지금도 음료수로 사용되고 있다. 이 궁남지는 백제 무왕( 武 王 )의 출생설화와도 관계가 있다. 무왕의 부왕인 법왕( 法 王 )의 시녀였던 여인이 못가에서 홀로 살다 용신( 龍 神 )과 통하여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이가 신라 진평왕 ( 眞 平 王 )의 셋째딸인 선화공주 ( 善 花 公 主 )와 결혼한 서동( 薯 童 )이며, 아들이 없던 법왕의 뒤를 이은 무왕이 바로 이 서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설화는 이곳이 별궁터였고 궁남지가 백제 왕과 깊은 관계가 있는 별궁의 연못이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백제의 정원( 庭 園 )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 일본서기 ( 日 本 書 紀 )》에는 궁남지의 조경( 造 景 ) 기술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경의 원류( 源 流 )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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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 창건하였고, 여러 차례 중수(重修)하였으나 자세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주위의 산림(山林)이 울창하여 거찰(巨刹)의 면목을 유지하고 있는데, 보물 제356호로 지정된 극락전은 드물게 보는 2층 불전(佛殿)으로 내부는 상 ·하층의 구분이 없는 조선 중기의 건물로서, 당시의 목조 건축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극락전 내에는 거대한 좌불(坐佛)이 안치되었는데 중앙의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좌고(坐高)가 16자, 가슴둘레 24자이며 좌우의 관세음(觀世音)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은 각 좌고가 16자에 가슴둘레가 18자이다. 또한 여기에는 석가불화(釋迦佛畵)가 있는데 길이 45자 8치, 폭이 25자 2치나 되는 조선 인조 때의 불화로 기구(機構)가 장대(壯大)하며 묘법(描法)도 뛰어나고 채색도 선명하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서기 660년(백제 의자왕 20) 백제가 나당연합군( 羅 唐 聯 合 軍 )의 침공으로 함락되자 궁녀 3,000여 명이 백마강( 白 馬 江 ) 바위 위에서 투신하여 죽었다고 한다. 그 바위를 사람들이 낙화암이라고 불렀는데, 이 암석 위에 1929년 다시 그곳 군수 홍한표( 洪 漢 杓 )가 백화정 ( 百 花 亭 )을 지었고, 절벽 아래에는 ‘낙화암( 落 花 岩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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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부여고적보존회( 扶 餘 古 蹟 保 存 會 )가 발족되어 옛 객사 건물에 백제관( 百 濟 館 )을 개관하면서 박물관으로 발전하였다. 1939년 4월 일제 총독부박물관 부여분관( 扶 餘 分 館 )이 되고, 1945년 8·15광복과 함께 한국의 국립박물관 부여분관이 되었다. 1975년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승격하고, 1993년 8월 현재의 건물로 이전하였다. 2002년 1월 현재 1만 3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였으며, 그중 1,0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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